글쓴이 : 보더콜리

대학 3학년 때였다. 교육학과에서 열린 교양 수업, “교육의 이해”를 들었다. 사범대학생이었던 나와 달리, 공과대학, 자연대학, 인문대학 등 전공이 아닌 학생들도 많이 왔다. 심지어 고등학생도 한 명 있었다. 미래에 이 학교, 이 학과에서 수업을 듣고 싶다며 청강을 신청했다고 했다. 새삼 대단해 보였다. 고등학생 나는 학교 수업 따라가기도 벅찼는데, 어떻게 이 자리를 올 생각을 다 했을까. 기특하네.

“자, 다들 눈 감으세요. 다 감았다면, 고등학교 3학년, 입시 때로 돌아갈 수 있는 학생 손 들어봐요.”

손을 번쩍 들었다. 내게 고등학교 3학년은 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많은 시기였다. 선생님 몰래 공부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교탁 앞 친구가 조용히, 교실 밖 감독 선생님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밤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사람은 고개를 숙여주세요.” 마피아 게임이 시작됐다. 야간 자율 학습 중 쉬는 시간엔 프로듀스 101 노래를 생목으로 완창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 노래 아냐며 다가와서 문자로 어떤 번호를 보내라고 했다. 그런 재미와 웃음이 만연했다.

한편, 그때는 처음 학교에서 운 시기였다. 전교 회장을 나가지 말라고,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이 말렸다. 내가 나가면, 다른 친구가 못 된다고 했다. 전교 회장을 하느라 성적이 떨어지면 학교장 추천 전형으로 대학을 못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하겠다는 마음은 결국 무너졌다.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나쁜 사람이 사서 될 필요가 있나. 그렇게 해도 대학 가는 건 어렵기 매한가지였다. 난 몰랐다. 우리 선배들은 길어도 반년이면 완성한 자기소개서였다. 나는 꼭 8개월이 걸렸다. 마지막 제출 전엔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냐고, 넌 도저히 글로는 안 되겠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도 안 되는 게 있음을 씁쓸하게 삼켜냈다.

그래도 고등학교 3학년이 다시 될 수 있다. 대학교에 다니던 5년은 이보다 더 힘들었다. 대학 생활과 고등학교 생활을 비교하면, 고3은 돌아갈 만한 시간이었다. 나중에 모든 학생에게 눈 뜨게 한 뒤,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이 많은 학생 중 딱 3명이 손들었다고. 집 가는 길 내내 왜 나는 3명 중 하나였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20대, 서툰 어른은 계속 옆을 봤다. 학교 처음 가는 날, 옆 사람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들고 가지? 이 수업에서 과제는 어떻게 하는 거지? 발제는 뭐야, 발표랑 다른 건가? 내가 밤새 골몰해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저 친구는 밤새 술 마셨다면서 어떻게 저렇게까지 해내지? 돈은 어떻게 버는 걸까, 저런 건 어디서 사는 거지? 두리번거릴 때는 몰랐다. 비교의 구렁텅이에서 발버둥 치던 내가 점점 그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는걸.

20살이었던 내게 꼭 말해주고 싶다.

옆에 보지 말라고. 울더라도, 지금 순간에 펼쳐지는 행복을 봐. 몰래 하지 말라는 일도 해봐. 많은 사람 앞에서 좋아하는 노래와 춤을 맘껏 보여봐. 누가 너한테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무너지지 마. 하고 싶은 마음 따라서 열심히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