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카피바라

‘20대’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까, ‘만족’에 두어야 할까를 고민하다.

때 맞춰 한국 나이 서른을 올해로 채우니, 성인이 된 후 자유로운 선택을 했던 지난 10년은 내게 20대였다. 어찌 보면 지난 10년 중 가장 만족한 일을 꼽는 일이 되기도 하니, 무엇을 적어야 하나- 하며 쉽사리 적을 수 없었다. 지난 날들을 곱씹어 보았을 때, 마땅히 후회되지 않는 것을 보니 꽤 괜찮은 시간을 보냈네? 하며, 약간의 인생 이야기를 덧붙여 꼽아본다.

대학 생활에 충실했던 일.

휴학 기간을 포함하면 장장 6년이라는 시간을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보냈다. 댄스 동아리에 무턱대고 가입했던 것이 대학교 1학년이었다. 사람들이 그 동아리라고 하면 모두 놀랄 만큼 내 평소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일이었다. 매주 2회 연습 중 피치 못할 사정을 포함해 1년에 단 두 번만 연습을 빠질 수 있고, 그 이상은 제명되는 무시무시한 규칙을 난 꼬박 버텨 1년을 채우고 공연을 했었다. 약학대학 입문자격시험(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PEET)을 준비한다고 결국 그만 뒀지만, 아직까지도 새벽까지 연습했던 그 순간들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 뒤로 2년 정도는 시험을 준비하다가 포기도 용기라는 생각에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라는 마음을 깊게 묻고, 복학을 했다. 뒤쳐진 만큼 따라잡겠다는 생각으로 공강시간 틈틈히 학부 연구 인턴활동을 하면서, 대외활동이나 알바를 병행했다. 인턴 월급도 있었지만 과외, 편의점, 치킨집, 일식집, 의류 포장, 데이터 라벨링, 연말정산 등등 아르바이트도 다양하게 해본 것이 나름 인생의 경험치를 쌓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느낀다. 장학금이 끊기지 않기 위해 수업도 열심히 들었었고. 대학생으로 할 수 있는 건 후회 없이 해본 것이 만족한 일 중 하나로 꼽겠다.

기회가 닿는 만큼 해외에 나가본 것.

처음에는 엄마를 따라 아시아권 나라에 패키지 해외여행을 따라갔었고, 세계 여행을 하는 나를 공상하던 때도 있었더랬다. 또, 그 나이 또래 친구들이 많이 나가는 교환학생에 대한 로망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해보지는 못했다. 여러모로 해외 살이는 접고, 대신 열심히 나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첫 자유여행을 다녀온 때는 바로 PEET 시험을 포기하고 복학을 앞둔 여름방학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여름에는 무작정 혼자 유럽으로 떠났다.

다른 문화권을 경험한 것은 이때가 처음인데, 하다못해 길바닥의 돌마저 한국과는 달랐다. 마트에서 장을 봐 호스텔에서 파스타를 요리해 먹는 것이 끼니였고, 공원에서 음악을 듣고 일기를 썼다. 때론 혼자기도 했고, 때론 좋은 사람들은 만나 함께 하기도 했다. 짐을 이고 지고, 버스와 기차를 타며 타지에서 내 한 몸 내가 건사해야한다는 것은 버거웠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특별했다.

운이 좋게 대학원생 프로그램으로 소정의 체제비를 지원 받아 한번 더 유럽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트렌토, 몇년 전 까지만 해도 검색을 하면 거의 정보가 없는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3주를 지냈다.

3주간 지냈던 작은 다락방

3주간 지냈던 작은 다락방

창문 사이로의 풍경

창문 사이로의 풍경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소는 할머니께서 내어주신 다락방. 창문 틈 사이의 눈부신 일출로 하루를 시작해 수업을 듣고, 캔틴 밀을 먹으며 지낸 그 시간은 앞으로도 인생에서 손꼽힐 특별한 경험이다. 새로운 공간에서 만난 인연들의 주는 인생에의 영감과 기억들은, 스무살에서 스물 아홉까지에 형성된 나라는 사람이 자리 잡는 양분이 되었기에, 가장 만족한 일이라 말하고 싶다.

30대 때 가장 만족한 일을 꼽게 되기까지, 앞으로 채워나갈 순간들은 어떤 것일까. 커리어의 방황기나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들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