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보더콜리

유년기는 유아기와 소년기의 중간이다.

이 말을 찾다가 ‘소년기’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다. 소년기는 ‘소년·소녀로 있는 동안. 일반적으로 아동기의 후반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만 열두 살에서 스무 살까지로 잡는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청소년기가 ‘아동이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도중의 시기’라는 뜻인 것에 비교하면 정확한 나이가 의미에 내포되어있다.

‘소년기’ 단어 만큼 새롭고 오래 기억에 남기고 싶은 기억을 뒤적거렸다. 12-20살 사이 내 시간에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떠오르는 건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좋아했던, 싫어했던, 아쉬웠던 사람들이 스쳐갔다.

딱 잊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한때 너무 잘 놀았다. 그와 관계를 끊었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기도 하지만, 이들은 내가 직접 “이제 우린 친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 친구는 7살에 이사 와서 낯선 동네에서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바로 옆 아파트에 살고,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됐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9시까지 유치원에 가고, 유치원에서 오후 2시까지 놀고, 그 뒤로도 유치원 바로 옆 놀이터에서 놀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돼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은 서로의 집에 가서 저녁을 같이 먹기도 했다.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를 같이 보낸 친구는 어느 날 하나둘씩 내 것에 손을 댔다. 시작은 아끼는 스티커였다. 스티커, 그쯤이야 주면 되지. 막내로 태어난 그 친구는 장녀로 태어난 나를 언니로 본 걸까. 그건 참아졌지만, 진짜 장녀는 동생 건들기를 참지 못 한다. 내가 괴롭히는 건 되지만, 남이 내 동생 건드는 꼴은 못 보지. 고작 5살 남자애는 말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누나에게 항변도 제대로 못 했다.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우는 동생을 두고 마음을 먹었다. 이젠 너랑은 안 논다.

14살에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갔다. 전학이 아닌 입학이었는데도 이미 애들은 다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그 사이에 “전학 왔어?”라고 물어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무리에 나를 껴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쓸쓸하게 있는 내게 말을 걸어준 사람이 그 다음 친구다. 공교롭게도 등하교 방향이 같았다. 등교하고 학교 수업을 같은 반에서 듣고 하교하는 내내 붙어있었다. 내 14살은 15살에도 16살에도 오래 갈 친구를 만들어줬다. 그 친구와 너무 감사하게도 같은 고등학교에 갔다. 뺑뺑이 추첨제 고등학교 배정인데도 운이 좋았다. 중학교 3년을 넘어, 고등학교 3년까지 함께 하는 친구가 됐다.

그에게 믿고 털어놓은 이야기는 모두가 알 정도로 파다하게 퍼졌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다른 지역 소속이였다. 내 중학교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알리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가 들렸다. 친한 친구가 그 이야기를 하는데,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너 그 이야기 누구한테 들었어?”라고 묻자, 그 친구가 난감해했다. 섬뜩한 느낌이 스쳤을까. 솔직하게 이야기해준 친구 덕분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그런 나를 보고 왜 그렇게까지 그 친구를 놓지 못하는지 속상해하셨다. 그 설움이 켜켜이 쌓이고 난 뒤에도 말을 꺼내기까지 많은 단어를 고르고 버리고 반복했다. 내가 왜 이런지를 너가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마음보다는,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치달았으니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말아달라는 간곡함을 가장 무겁고 무섭게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야 다시는 이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을 테니까.

내 결정은 하나도 쉽지 않았다.

여러 번 화와 눈물을 삼켰다. 그래서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나이가 든 지금도 과거의 나와 똑같이 했을 것이다. 성인이 되기 전 학교에서 만난 숱한 친구들 중 딱 3명이 반갑지 않은 것이다. 그들과 그때의 시간 덕분에 나는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지켜내고야 마는 안전선을 명확히 알게 됐다. 그리고 마치 지구의 맨틀, 내핵, 외핵처럼 관계의 층위를 배웠다. 고마워, 하지만 너를 보고 싶지는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