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고슴도치
유년 시절, 어린 시절 하면 재미난 기억, 슬펐던 기억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 남는 이야기가 있다.
여느 때처럼 차례를 지내고 가족과 다 같이 외가댁으로 갔다. 추석 연휴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던 태풍은 시골에 도착하자 더 강해졌다. 엄청난 강수량과 비바람이 몰아쳤다.
할머니 댁이 리모델링을 한번 했지만, 강한 비바람이 계속됐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큰집으로 모두 챙겨온 짐을 싸고 이동했다. 피난 아닌 피난이었다. 큰집에 도착하고 얼마 안 돼서 전기도 나가고, 가스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전기가 안 돼서 건전지가 꽂혀있는 라디오를 틀고 기상 상황을 계속 주시했다.
밖은 비바람이 쳤다. 오토바이, 경차는 그 비바람을 견디지 못해 넘어져 굴러다녔다. 또 바람은 창문도 가만두지 않았다. 촛불과 랜턴으로 겨우 불 밝힌 그 상황에서 바람 소리, 부서질 듯한 창문 소리, 빗소리, 물건 부딪히는 소리, 찌찍 끊기며 겨우 이어져 나가던 라디오 소리 등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청각, 시각적으로 모든 요소들이 그날 밤 잠들지 못하게 했다.
아침이 찾아오자마자 다시 할머니댁에 갔다. 파아란 스트레이트 지붕이 여기저기 날아가 버렸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자마자 날아간 지붕을 찾고 집을 청소하고 정리했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쉬다 올 거라는 계획은 무참히 무너졌다. 되레 무서운 경험을 했다.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창문에 테이프를 붙이고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동여매도 그 매서운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평생에 경험하기 힘든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