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너구리
초등학교 입학 후 얼마 있다가 이사를 했다.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며 약 1시간 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8살에게 왕복 2시간 등하굣길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버스 창문에 기대 잠드는 일이 많았다. 당시엔 교통카드를 흔히 사용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버스요금 500원으로 매일 아침 동전 2개를 받으며 현관을 나섰다.
초여름 체육수업으로 녹초가 된 어린이는 버스를 타고 깊은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휘황찬란한 간판이 가득한 동네였다. 급히 버스에서 내려 본 세상은 거인국에 도착한 소인이 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모든 것이 커다랗고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부모님께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잠깐 울고 나니 구걸해서라도 돈을 구해서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가장 먼저 롱부츠에 짧은 단발머리를 한 예쁜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말한 뒤 500원을 받았다. 침착하게 반대편 버스정류장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집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아파트 상가 호프집에서 부모님이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린 딸이 평소와 달리 늦게 집에 오는데 걱정하기는커녕 초여름을 즐기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에 배신감이 들었다. 엄마에게 둘도 없는 딸을 걱정하지도 않냐며 화를 냈지만 내게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친구들이랑 놀고 오는 줄 알았지. 그래도 잘 찾아왔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보며 부모님과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양념치킨을 먹으며 화해했다.
그날 저녁 잠에 들며 믿을 사람은 없으니, 자신을 스스로 잘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제자리에 머물며 울기보단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됐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