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보더콜리
나, 왜 일하는지 생각 안 해봤구나.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주제를 컴퓨터 화면에서 한참 뚫어져라 쳐다봤다. 처음 쓴 문장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나”였다. 이 질문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찬찬히 기다렸다. 어느 방향으로 몰리는지 보고 싶었다. 아주 밤늦은 야근, 녹초가 된 몸, 눈뜨기 싫은 아침. 이 모든 불호를 이겨내고도 일을 하는 이유를 떠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 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구나. 살짝 소름 돋았다. 내가 알던 내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일하는 걸 좋아해서 꾸준히 일하고 싶은 건 줄 알았다. 누군가 내게 언제까지 일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나는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다. 힘이 날 때까지 계속. 70이 되고, 80이 되어도 일할 수 있다면 일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오래 일하려면 잘해야 된다. 잘해야 오래 나를 찾아주지 않겠는가. 일잘러가 되기 위해 이것저것 일도 해보고, 여건이 된다면 완성도를 최대한 높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애써도 충만하게 만족감이 차오르지 않았다.
이제 알았다. 내겐 일하는 이유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가 오늘은 어떤 일을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설렘이라는 사람이 멋져 보였다. 일 생각에는 on/off 스위치가 없다는 선배를 우러러봤다. 10년, 20년도 넘게 일을 꾸준히 해내는 임원들과 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렇다. 이들을 선망하는 마음에 내 시야는 흐려졌다. 안개 속에서 2년 만에 첫 회사를 그만뒀다. 이직한 회사는 1년을 채우고 나왔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길을 찾을 때 와서 알았다. 다음 길을 못 찾는 건 지금 상황이 복잡해서가 아니었다. AI니, 대학원이니, 다 핑계였을지도 모르겠다.
덕질, 자녀, 대출금. 그들이 열심히 하는 데 다 이유가 있었을 거고, 각기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동료와 선배들 따라 ‘일단’ 열심히 일하는 삶이었다. 그들이 왜 열심히 일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열심히 불태우던 겉과 달리, 속이 너무 비어 있음을 깨달은 지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스텝을 정하는 이 길목에서 정하고 가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