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카피바라
입사 교육 때,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친 대학원 생활을 급하게 정리하고 제주도로 떠난 내가 그 순간에 할 수 있던 생각은 딱 두 개였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탈출하기 위해서’. 강사님께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것은 굉장히 근본적이고 1차원적인 이유이고, 그 위에 자아실현과 성취감 등의 고차원적인 이유가 존재하며 지향점을 차근히 옮겨가는 것”이라 말했다.
어릴 적에는 내가 조금이나마 세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었다. 어려서는 화가가, 조금 자라서는 환경 운동가가 되고 싶었고, 조금 더 머리가 크고 나서는 먹고 살 수 있을 만한 직업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꿈과 열정은 때로는 강렬히 타오르는 불꽃 같았고, 사그라들 즈음에는 그저 잔잔한 온기였다.
내 스스로만 건사하는 것으로도 불충분한 현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것조차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바라는 가족들의 소망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공부한 것들과 나의 경험들을 기워낸 현 정착지가 현재의 직장이다. 지금 하는 일이 내 천직이라 말한다면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지금 이 일은 내 고민의 산출물이며 내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다.
나는 내 인생을 살면서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공부한 것으로 먹고 살 수 있기를 바랐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갈 수 있기를 바란 것에 대한 선택.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과 그것으로 먹고사는 것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다.
입사한 지 1년이 넘은 지금도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 같다. 내 삶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내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원동력은 될 수 없다.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말은 누군가에겐 다소 원시적인 생각으로 보이겠다. 하지만, 삶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나는 아주 마음대로 충실히 개인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도전과 성취의 채워질 수 없는 굴레를 탈피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갈 이유와 인생의 행복, 그리고 어떤 성취감은 개인적인 규모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지금도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