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카피바라
여행의 기억은 들춰내고 톺아보면 볼수록 기억이 스러지는 만큼 곱게 빛난다. 많은 공간을 거쳐 왔고 추억거리라고 할만한 에피소드도 종종 생겼다. 지난 모든 여행이 추억이나, 단 하나를 꼽자면, 홀로 비셰흐라드를 거닐던 순간이다.
비셰흐라드는 프라하 남쪽의 작은 언덕으로, 중심가와는 조금 떨어져있어 한적한 곳이다. 블타바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성벽길, 체코의 역사를 담은 이 중세 시대의 망루는 현대 시대에는 경관을 감상하는 공원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생각보다는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지 않는 곳인데, 내가 방문했을 때도 드문드문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3주간의 여행 중 마지막 5일을 보낼 프라하에 도착할 때쯤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다. 나의 욕심만큼 불어난 캐리어의 무게와 돌바닥 길은 썩 상성이 좋지 않았다. 밑바닥에 다다른 체력만큼, 낭만과 감성도 사그라진 상태였다. 관광지의 인파도 이젠 질렸어. 그래서 호스텔에 비스듬히 난 창문으로 하늘만 바라보며 누워있다가, 그냥 조금 먼 동네를 구경하면 좋겠다 싶어 나왔다.
노을이 아름답다는 후기에 비셰흐라드를 골랐다. 정돈되지 않은 풀과 나무들이 마음을 홀렸다. 그저 음악을 들으면서 공원을 걸으며 꽃향기를 맡았다. 벤치에 앉아서 햇빛의 질감을 느끼고 서늘해지는 공기에 땀을 식혔다. 고독과 사색 그 어느 중간. 그 이후로 더욱 그런 시간을 애정하게 되었다.
성벽에서 노을을 기다리며 생소한 첨탑과 묘지, 갤러리를 살펴보기도 했다. 마치, 다른 차원의 공간에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풀숲과 시간을 담은 건물들. 그 순간 만큼은 그저 붉게 물든 노을과 바람, 조용히 감상하는 나만이 존재하는 듯 했다.
해가 저물고 돌아오는 거리는 약간 어둑하고 조용했지만, 간간히 사람들의 낭만이 들려와 내 마음을 채워줬다. 그 이후로도 여행지의 한적한 공원을 거니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아직도 가끔 그 고요를 그리며, 그날의 노을처럼 여운을 남기며 현실로 돌아왔다.
햄버거보다 감자튀김, 간식은 늘 감자칩이 1순위. 문득 깨닫고 보니, 모든 감자 요리를 사랑하면서도 정작 감자가 주인공인 요리를 해본 적은 거의 없다. 일찍이 코딩에는 재능이 없음을 발견했으나, 어쩌다 보니 AI로 밥벌이 중이다. 스트레스로 카페인 민감 체질을 극복하고, 커피 중독자가 되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조각들을 기워내며, 오늘도 인생을 짓는 중이다.